당신은 그리고 계십니까? 


"아니 그런 고민도 없이 어떻게 로고를 만들란 말씀입니까?"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한 사무실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부하 직원들에게도 좀처럼 큰소리 내는 일이 없는 표아트의 호통이 향하는 곳은 광고주다(뜨악).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광고주는 이내 잠시 자리를 뜬다. 계약은 물 건너갔겠거니 생각했는데 며칠 후 표아트는 새로운 로고 시안을 잔뜩 내밀며 어떤 것이 예쁜지 골라보란다.

<그릴 수 있어야 기업이다>의 저자 표병선(표아트)과 3년 여간 근무하던 시절 종종 겪는 일이었다. 한국의 광고홍보업계에 몸담았던 내겐 참으로 신선하고도 신기한 장면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긴 세월 디자이너로서 쌓아온 굳건한 신념과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중국에서 17년간 디자인하고 브랜딩하며 겪은 중국 진출 중소업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점 하나에도 기업의 방향이 담겨야 한다'는 그의 디자인 철학이 사례마다 묻어난다. 상하이의 독자라면 너무나도 익숙할 '청학골', '다락방', '블루아이(코리아부동산)' 간판 너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기업도 백기를 들고 퇴장하는 것이 새롭지 않은 중국시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전을 일궈 지금까지 버텨낸 작은 점포들의 도전기와 성장기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했다. 

광고주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기술적으로 예쁘게 그려내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저자는 '리더의 철학과 기업의 방향성이 보이도록 담아내는 것'이 비로소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도 기업의 리더도 아니지만 죽비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토록 능동적으로 나의 업에 임해왔는가, 다른 이의 업을 충분히 존중했는가.

그래서 이 책은 누구나 읽어도 좋다. 인플루언서의 피드 한 컷이 신문기사보다 파급력이 큰 요즘, 디자인적 사고와 유연성은 누구에게나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가치를 어떻게 시각화해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 '나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만으로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름난 자기계발서나 경영서적을 읽을 때보다 크게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표아트에게서 보았던 진심과 열정이 가식없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디자인씽킹의 출발점은 '질문하기'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상하이저널 독자들께 질문을 던져 본다.  

"당신은 무엇을 그리고 계십니까?" 

김혜련(ryun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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